코소보에서 첫 인사 드립니다!

by Chris Cho

코소보에서 첫 인사 드립니다!

주 안에서 생명처럼 소중한 동역자들에게 코소보에서 첫 편지 드립니다. 첫 소식이라서 내용이 길어져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이 첫 선교뉴스 레터를 시작으로 앞으로 쿼터별로 소식을 드릴 계획입니다. 다음 선교뉴스 레터 발송은 12월로 예정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새벽부터 비가 오고 있습니다. 창문을 열어젖히고 유쾌한 빗소리를 들으며 욥기를 묵상합니다. 상상 그 이상의 고통과 절망 가운데 몸부림하며 바람 같이 허무한 한탄을 쏟아 놓을 수밖에 없는 욥에게 고매한 선생 노릇을 하려고 친구들의 모습…그들은 욥을 사랑해서 그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지만 욥의 상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차마 입조차 열지 못합니다. 하지만 7일만에 결국 열린 그들의 입에서는 왜곡된 자기 확신 속에서 그 마음의 고집스럽고 잔인하고 거친 것들만 쏟아져 나올 뿐입니다. 정말 의외입니다. 번갈아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 욥은 숨을 고를 틈도 없고 그들의 바른 척하는 꾸짖음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마음을 열고 눈을 뜰 수가 전혀 없습니다. 

“나는 이 먼 곳에 선생인 척, 바른 척하려고 왔는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입니다.

코소보 행 비행기 안에서의 첫 식사… 

여느 기독교인들과 마찬가지로 식사 때마다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인생에서 처음인 것처럼 느낄 만큼 전적으로 의존적인 존재로서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있습니다. 평소 늘 감사의 말로 기도를 드렸지만 소위 월급이란 것을 일의 대가로 받아 시장에서 장을 보고 음식을 조리해서 먹을 때마다 드렸던 감사와는 너무도 다르게 지금은 당황스러울 만큼 전적인 의존의 순간입니다. 마치 3만 피트 상공에 있는 모든 승객들이 일제히 파일럿에게 전적으로 자신을 의존하듯… 

물론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의존이 흔들릴 수 없는 정답이지만 이 실존적인 순간, 하나님 안에서 확신하는 저의 선교 사역의 가늠하기 힘든 작은 부분조차 그리스도 공동체의 보살핌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음을 멍하게 느낍니다. 이 한 끼의 기내식은 저의 월급이 영구적으로 중단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열정에 동의한 지체들의 헌신적인 동참을 통해 일방적으로 제 앞에 와 있습니다. 이 한 끼를 시작으로 앞으로 코소보 땅에서 사는 동안 필요한 모든 것들은 이 통로를 통해 저에게 공급되겠죠. 

 여러분들께 개인적으로 깊은 감사를 드리고 나아가 무엇보다 우리와의 동역을 이렇게 시작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압도된 감사의 마음을 여러분과 나눕니다.

나 살던 곳 샌디에고 마지막 방문 날 해안가에서 그리고 시애틀의 바닷가에서 주워 온 반 줌의 조약돌들을 제 방 탁자에 내려놓으며 코소보 (Kosovo), 쟈코바 (Gjakova)에서의 첫 날을 시작했습니다.

몇 년 전 한국 방문 때 초등학생 조카가 저를 위해 방 천정에 달아주었던 야광 별 모빌을 전등에 달고 밖을 내다보니 집 바로 앞의 회교 사원이 창문을 가득 채웠습니다. 제가 여기에 온 이유를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슈켈젠 (Shkelzen)이란 이름을 가진 집 주인은 양봉업을 하시는 70 초반의 쟈고바 토박이시고 저와 같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시지만 이용객은 거의 없고 저 혼자 방을 렌트하고 있습니다. 자주 음식을 함께 먹고 있는데 집 주인은 저에게 과일과 스넥을 자주 주시면서 나누며 사는 공동체가 되어갑니다. 

낯선 땅에서의 첫 걸음이 고립되지 않기 위해 현지인 집에서 함께 살기로 했습니다.

길 잃은 자를 향한 마음

이렇게 집 주인과 둘이 이곳에서 생활하기로 마음먹었지만 곧 한 꼬마 친구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네요. 

태어난 지 3주도 채 되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뼈만 앙상한 모습으로 집 마당에 나타났습니다. 외면할 수는 없었지만 키우던 강아지와 고양이를 친구에게 입양해 주고 이곳에 왔고 더구나 이곳에서 반려동물에게 시간과 마음을 쏟을 여유도 없기 때문에 “절대 너를 입양할 수는 없어!” 단호하게 말하고 음식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과연 얘가 살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지금도 벌떡벌떡 먹지 않아서 애를 태우고 있지만 이제는 살도 찌고 털도 부드러워지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처음엔 경계하고 곁을 주지 않아서 만지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저에게 게임을 독촉하고 있습니다. 밤낮으로 찾아오는 커다란 고양이들을 물리쳐주는 보디가드 겸 식모가 있다고 여기는지 이젠 이곳을 자기 집으로 생각하고 떠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친구를 볼 때 자주 이곳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죽어가고 있는 수많은 영혼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들을 찾으며 안전함을 느끼고 함께 있고 싶어할 때까지 인내하며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다짐해 봅니다.

아물지 않은 상처

코소보는 깊은 상처가 있는 땅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적개심이 선명한 곳입니다. 대부분 잘 알고 계시는 것처럼 1999년 코소보 사태 중에 수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한 곳입니다. 이곳 쟈코바는 역사적으로 전쟁의 얼룩이 다른 곳보다 심해서 Gjakova라는 그 지명 조차 “피의 양동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곳곳에 코소보 사태의 희생자들을 기념하는 묘지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동네 모퉁이를 돌아 들어가는 식료품 가게 앞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을 위한 조형물도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오늘 뉴스 프로그램에도 코소보 전쟁에 참전했던 분이 출연해서 울먹이며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직 알바니아어로 이해할 만한 수준이 전혀 못 되어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24년 전에 깊게 벌어진 그 상처로 인한 고통은 오늘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운동 삼아 언덕을 올라갔다가 그곳에 있는 희생자 기념묘지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매일 가고 싶은 좋은 운동코스인데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길에 버려진 개들이 외진 곳에서 공격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힘든 순간을 한번 겪고는 가기가 주저되는 곳입니다. 

이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학살 사건이 잊혀지길 원치 않지만 또 한편 그들이 이 상처에 영원히 머무는 것은 더욱 더 원치 않습니다. 부디 주님께서 그들의 내일을 향해 주고 계시는 희망과 화해의 메시지를 그들이 꼭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저를 포함한 이곳 코소보 선교사들을 통해서…

코소보는 이슬람 국가?

코소보 인구의 95.6%가 무슬림이라면 이슬람화가 99%에 육박하는 서북 아프리카의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이슬람의 본영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종교화된 국가들과 비슷한 수치입니다. 

하지만 길거리를 다니다보면 이곳이 과연 이슬람 국가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네 곳곳에 이슬람 사원은 많지만 길거리에서 무슬림임을 알아볼 수 있는 복장을 한 사람들은 남녀 불문하고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정부 형태도 공식적으로 세속정부를 지향하고 있고 모스크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사람들도 소수입니다. 동일 민족 알바니아인들로 구성된 두 국가 코소보와 알바니아의 역사상 최고의 국가적 영웅은 공히 제르즈 카스트리오티-스켄델베우 (Gjergj Kastrioti-Skenderbeu)인데 역설적이게도 그는 발칸에서 가장 이슬람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된 현재의 코소보와 알바니아 땅의 이슬람화에 절대 공헌한 이슬람 국가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대항해서 15세기에 이슬람 세력이 서유럽으로 진출하지 못하도록 막아낸 인물입니다. 

 이 처럼 외형적으로는 완전히 세속적인 국가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오랜 세월 동안 다져지고 스며든 이슬람 공동체의 저항하기 힘든 영향력이 살아있는 이슬람 국가임이 분명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을 무슬림이라고 여기고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지만 크리스쳔은 자신의 믿음을 밝히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곳. 2.2%의 카톨릭 신자들은 도심 밖으로 밀려나 교외에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몇 안 되는 정교회 건물들은 유적지 정도의 수준으로 남아 있고 그 주변에서는 지속적으로 무슬림들의 반대 시위가 일어나며 개신교회는 대도시들에조차 마이크로칩 사이즈 교회 몇 개 씩만 존재할 뿐입니다. 

 코소보 땅 역시 다른 이슬람 국가들처럼 선교가 쉽지 않다는 것이 점점 더 삶에 와 닿고 있습니다. 누구도 기독교 선교를 빌미로 공개적인 불이익을 주거나 법적인 제제를 가하거나 물리적인 종교탄압을 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전 직후의 절박했던 시기를 제외하곤 여전히 공개적인 복음 선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곳이 코소보입니다. 구호품만을 바라고 교회 “건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현지인들이 모두 떠나자 선교사들도 대부분 떠났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영적인 성숙은 갈 길이 너무 멉니다. 제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는 한인 선교사 이00 목사께서 개척하시고 담임목회를 하시는 곳입니다. 이곳 코소보 선교사들 중에서는 가장 오래 현지에 거주하고 계시기도 하고 사역도 가장 활발하게 하고 계신 분인 데 이 교회의 몇 되지 않는 교인들은 영적으로 아직도 내일의 모습을 그려보기 힘든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앞으로 주어질 긴 인내와 사랑의 시간과 공간이 가늠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00 선교사의 25년 이상의 사역의 결과는 결코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를 통해 훈련받은 제자들 중 한 형제는 우리라도 솔깃할 만한 기회를 포기하고 주님께 자신을 헌신했고 결국 온 식구들과 함께 북마케도니아 이슬람권 선교사로 파송 되어 그곳에 사는 알바니아어권 무슬림들에게 전심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재환 선교사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명의 희망 (평화)의 사람 찾기”가 선교에서 얼마나 통렬한 의미를 지니는 지 실감나게 하는 살아있는 코소보 선교 역사이며 현장입니다.

한 번에 한 생명씩

코소보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했던 제 설교의 제목입니다. 저 역시 이00 선교사의 아름다운 본보기에서 보듯이 그리고 제 입으로 전했던 메시지처럼 한 사람의 영혼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첫 2년은 언어와 현지 적응에 집중하는 시간이지만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지난 7월에 열린 여름 캠프에 교사로 참여했습니다. 교회에서 열렸지만 종교행사는 전혀 아니었고 어린이들을 초대해서 프로그램과 교제를 하는 행사였는데 의외로 중고등부 학생들이 10명 이상 참여해서 3일 내내 중고등부 캠프가 병행되었습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주제 토론과 게임 등을 통해서 학생들과 허물없이 가까워질 수 있었고 이후에 몇 명의 남학생들과는 두 번 수영장에 함께 가서 놀고 다른 도시로 field trip도 한 번 다녀왔습니다. 이 친구들은 지난 해 이곳을 정탐 여행으로 방문했을 때 함께 등산을 했던 친구들입니다. 이들 이외에 다른 여학생들도 field trip에 참여하려다 각자의 사정으로 오지 못했지만 앞으로의 이벤트에는 참가할 의사를 여전히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열어 주시는 대로 이들과 계속해서 교제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사진 속의 구슬 팔찌는 여름 캠프 크래프트 시간에 만들었는데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그들과 함께 “내 마음 속의 코소보” 이야기를 나누었고 학생들이 저의 진심에 공감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 세대는 확실히 다른 문화에 열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 중 몇몇은 제가 2년간의 언어훈련과 현지 적응을 마치면 이미 대학생, 청년으로 성장해 있을 것입니다. 언제 이들과 솔직하게 복음을 나눌 수 있는 열린 교제를 이룰 수 있을 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우리가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일을 시작하신 주님 안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울타리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도와줄 수 있도록 한 번에 하루씩, 그리고 한 번에 한 생명씩, 여러분과 함께 기도하고 섬기며 인내하며 사랑하기 원합니다.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왔습니다. 그런데 저 길 잃은 아기 고양이 같은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 땅의 영적 긴박함과는 달리 제 안에서는 늘어진 모습이 자주 발견됩니다. 주님 앞에 흐트러진 저를 인정하고 내려놓지만 저의 다짐과는 다른 곳에 서 있는 자신을 또 다시 발견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를 보내며 함께 선교하기로 결심해 주신 여러분과 주님을 생각하며 저의 사명을 다시 새깁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삶의 의미로 남겨 주신 일은 이것이 마지막이니 싸움을 쉬거나 포기하지 않고 혼자 쓰고 읽는 저의 노트 안에서는 결국 승자로 남도록 이곳의 하루를 살아가겠습니다. 전심을 다하되 지치지 않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시간을 기대하고 적극적으로 찾는 일에서 기쁨을 발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열정과 회복과 기쁨과 그리고 그 분 안에서의 진정한 항복이 우리의 삶 가운데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첨부: 저의 건강에 관하여

코소보에 오기 직전에 오른쪽 어깨 MRI를 찍었고 회전근개 부분 파열 (partial rotator cuff tear)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재활과 회복에 6개월이 걸린다고 해서 선교지로 일단 갔다가 자연치유가 되면 최선이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10월 말에 한국에서 열리는 Come Mission 인터컨퍼런스 참석 차 들어갈 때 선교사 우대 할인으로 수술을 할 계획을 갖고 선교지에 왔고 그 동안 한국에서의 수술에 관한 정보도 얻고 또 도와줄 수 있는 의료선교단체와도 연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의료보험이 없으면 선교사라 하더라도 약 800만원 + 재활치료비 (한 지방병원에서는 절반 가격이지만 여전히 감당되지 않는) 정도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현재까지 확인한 바 미국에서는 제 의료보험 커버리지로는 총 $1,000의 저렴한 가격으로 수술과 재활치료를 모두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제가 갖고 있는 개인 펀드로 충당할 수 있습니다. 선교 결정 이전부터 진행되어 왔던 병변이라 당연히 개인적으로 처리되어야 할 것입니다. 

 담당 의사의 소견과 다른 경로를 통해 얻은 다른 의사들의 소견 모두 “부분 파열이지만 그 부분이 전체 두께로 파열되었기 때문에 수술을 통해서만 회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술을 오랫동안 미루면 결국 부분 파열이 회전근개 전체 파열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치유를 위해 기도해 오고 있고 아직도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수술 없이 치유되는 기대를 분명히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지난 2년 동안 어깨에 대한 자연치유를 위해 저와 중보기도팀이 함께 기도했고 선교사 훈련에도 믿음으로 참여했었는데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치유해주지 않고 계신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수술 역시 전향적으로 고려 중입니다. 그리고 두 달 전에 왼쪽 어깨에도 같은 증상이 나타나서 돌아가게 되면 이것도 진료를 받을 계획입니다. 

수술을 받기로 결정한다면 담당의사와 상의해서 미리 날짜를 잡고 한국 컨퍼런스 참가 후 11월 중순 즈음 미국으로 귀국해서 저의 보험 Sharp Health Plan 사용이 가능한 샌디에고에서 수술 받을 계획입니다. 수술 후 2주째부터는 1주일에 2회씩 8주간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기에 이 기간동안 필요한 다른 병원 치료도 진행하며 이 기간 동안 LA 본부보다는 샌디에고에 머물게 될 것 같습니다. 수술 후 6주간은 상시 팔걸이를 착용하고 어깨를 전혀 사용할 수 없다고 하는데 6개월의 회복 기간 중 얼마나 일찍 선교지로 복귀할 수 있는지 담당 의사에게 문의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언어 훈련은 계속 할 계획입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동안 여기에서 배웠고 또 10월까지 배울 내용을 가지고 회복 기간동안 혼자 혹은 온라인으로 의미 있는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위해 동역자 여러분께 기도 요청 드립니다. 특히 왼쪽 어깨까지 수술해야 하는 일은 꼭 피하고 싶지만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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